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매 협정 (문단 편집) ==== 3차 회담 ==== 군사 배치가 마무리되자 사카이와 타카하시는 6월 9일, 거인당에서 허잉친과 세번째 회담을 가졌다. 허잉친은 사카이 등에게 먼저 "일본 측이 희망하는 점은 어제에 이르러 이미 완전히 처리되었다."면서 답변을 제출했다. * 1. 우학충, 장정악의 면직. * 2. 군분회 정훈처는 이미 폐지되었으며, 헌3단도 이미 전근시켰다. * 3. 하북성 당부는 이미 바오딩으로 이동시켰으며, 톈진시 당부는 이미 페지시켰다. * 4. 일본측이 양국 국교에 장애가 된다고 여기는 단체를 이미 폐지시켰으며, 또한 평진 지방 당국에게 엄명을 내려 일체의 모든 국교를 해치는 비밀 조직에 대한 단속에 책임지도록 하였다. * 5. 51군은 이미 이주할 것을 결정하였다. 허잉친은 또한 이렇게 말하였다. >"장 위원장이 갖고 있던 중일문제에 대한 견해는 금년 2월 14일, 오사카 아사히신문과의 담화에서 알수 있다. 중일간에 반드시 친선제휴해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 중앙의 기정방침인 동시에 장 위원장의 방침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결코 변경된 적이 없었다. 이러한 곳은 모두 사실로써 증명할 수 있으며 말로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카이 등은 오히려 분노하며 우학충이 섬감천변구 초비총사령으로 전근된 것은 승진이지 처벌이 아니며 중앙군이 철수하지 않은 것은 중국 정부의 무성의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어 사카이는 새롭게 요구를 제시했다. * 1. 하북성 내의 모든 당부를 완전히 취소할 것.(철도당부도 포함, 평진지방에서의 책동 금지) * 2. 51군을 철수시킬 것.(바오딩 이남으로 이주) * 3. 중앙군은 하북성 경계를 반드시 떠날 것.(바오딩 이남으로 이주) * 4. 전국의 배외, 배일행위를 금지시킬 것. 사카이는 "이 요구를 즉시 받아들여 처리하지 않으면 일본군은 자유행동을 한다. 1,2,3 항목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12일 정오까지 회답하라."라고 최후통첩을 날리고 일본어로 필사한 3페이지 짜리 서류 한부를 허잉친에게 건네주고 나가버렸다. 이 서류는 총 17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8개 항목은 이미 중국 측이 승낙한 것이고 4개 항은 위에 나온 내용으로 일본이 기한 내에 답변을 요구한 것이었다. 잠시 후 사카이는 다시 돌아와 "중앙군을 하북에서 철수시키고자 하는 것은 일본군의 결의에 속하는 것으로 결코 변하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난폭하게 말하고 다시 떠났다. 이어 일본군은 고북구와 산해관에서 항공기, 기병, 보병부대를 증강하여 무력시위를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